내이야기

감옥에 갇힌게 어디 그들 뿐이랴 - 연극 <프랑스 정원>을 보고.

나와 마을 2010. 2. 28. 10:06

"죄수들에게 기타가 무슨 소용이 있죠?"
"그럼 줄이라도 줘라! 차라리 목이라도 매게..."

 

죄수들은 항상 땅을 판다. 그것은 그들의 무덤이 될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끝끝내 그곳 묻히지 못한다. 이 얼마나 엄청난 모순이란 말인가.

 

어제 본 연극 <프랑스 정원>은 좀 무거웠다. 박제(剝製)된 삶과 허위의식을 키워드로 한 이 연극은 죄수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 <프랑스 정원>. 항상 감옥을 모티브로한 영화나 연극들이 그러하듯이 주된 이야기는 현실적 속박과 이상을 꿈꾸는 자아의 충돌을 은유적으로 때론 과장되게 표현한 연극으로 이해된다.

 

 

두 감방에 갇혀있는 여죄수들의 이야기와 간수들의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로 엮는다.

 

제1감방: 이모와 그의 두 여조카가 살고있다. 교도소내에서 예언자로 통하는 이모, 그 카리스마로 인해 교도소장과는 거의 친구처럼 지낸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죄수들의 박제된 삶을 은유적으로 조소하는 블랙코메디가 주를 이룬다.


제2감방: 네 모녀가 갇혀있다. 현실세계에 순응하고 살아가는 엄마와 언니들과는 다르게 막내딸은 항상 반항적이다. 그녀는 항상 질곡속에 갇힌 그들의 삶에 정면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끊임없이 저항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오는건 가혹한 형벌뿐.

 

교도장과 간수들: 부녀 지간이다. 그러나 그네들의 삶 또한 그리 녹녹치만은 않다. 단지 통제하는 자와 통제 당하는자라는 관계의 차이만 있을뿐, 그들도 역시 그들의 죄수처럼 감옥에 갇혀버린.

 
처음에는 가벼운 웃음으로 시작하는 이연극. 여죄수들의 점호시간에 한 죄수가 갑자기 교도소장에게 덤벼든다. 그리고 그 벌로 20일간의 독방 생활속에 갇혀 있다 나와 가족들에게 하는말.

 

"모두가 당연히 순응하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거대한 질서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어!" 라고 그녀는 당당하게 외친다. 

 

그녀의 두 자매들은 각자 몽유병, 과대망상이라는 정신병을 가지고 살아간다. 큰언니는 자신이 임신을 했다고 믿으며 항상 베게를 배에다 두르고 다닌다. 생명이 자랄수 없는곳에서 그녀는 한줄기 희망을 잉태하고 싶었으리라. 그리고 작은언니는 몽유병 환자다. 항상 잠자다 벌떡 일어나 그녀가 꿈꾸는 파리로의 여행을 한다. 샹젤리제, 오르셰 미술관 등등. 현실에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머나먼 그곳. 이때 프랑스 음악 <파리의 하늘밑>이란 음악이 잔잔히 흐른다. 가족들은 그들의 질환을 애써 외면함과 동시에 그 거짓된 현실을 아예 사실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들에겐 그것이 오히려 더 편하니까. 그 거대한 허구에 정면으로 도전해 봐야 항상 되돌아오는 것은 상처뿐.

 

그녀들의 이모는 간수들의 꿈해몽까지 직접 해줄 정도로 예지력이 있다. 이런 그녀의 포스는 죄수 주제에(?) 감히 교도소장과 친구처럼 지낼만큼 막강하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본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세계에선 항상 땅을 판다. 그들은 그것이 그들의 무덤을 파는 것이라 굳게 믿는다. 그러나 어느날 교도소 밖을 빠져나가 하수구에서 이모가 보게된 것은 뼈들의 더미. 무가치한 노동으로 점철된 그들의 삶이 끝나고 이르는 곳마저 그 알량한 안식이 아닌, 하수구의 개들에게 육신의 살들이 발라먹혀지는 그런 광경이었으니. 아, 삶이란게 고작 이런것이었던가? 예지자의 권능으로도 어쩔수 없는.

 

간수들인 그녀는 자매지간이다. 그녀들과 그녀의 아버지인 교도소장은 항상 목마르다. 통제하는 자와 통제당하는 자의 이원적 지배체계의 상부구조에 서있는 그들에게도 감옥생활은 항상 불안하고 고독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이 평등한 고독함. 그래도 그들은 강변한다. 적어도 이 감옥안에서는 우리가 주인이라고.

 

처음에는 가벼운 웃음으로 시작한 이 연극은 어느새 우리를 불편한 진실과 맞닥뜨리게 한다. 이따금 다소 억지스러운 대사와 과장된 설정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80년대에 젊은 시절을 지내온 분이라면 그 마저도 공감할 수 있을것 같다. 감옥속에 갇혀사는 이들이 어디 그 죄수들 뿐이겠는가. 가끔 삶이라는 문제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해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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